"20년간 숙련공 다 떠났는데…" 탈원전 열풍에 망가진 '유럽産 원전의 꽃' [김리안의 글로벌컴퍼니]

입력 2022-07-19 09:37   수정 2022-08-12 00:02


프랑스가 전력공사(EDF)를 완전 국유화한다. 2005년 투명성 향상 등을 목표로 진행했던 부분 민영화를 제자리로 돌려놓겠다는 취지다. 그 배경엔 러시아 전쟁으로 촉발된 유럽 전역의 에너지 대란이 있다. 프랑스 정부는 현재 쥐고 있는 EDF 지분 84%를 100%로 늘려 "에너지 주권을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EDF 앞에 놓인 과제는 산적하다. 우선 프랑스에 20년 만에 처음으로 세워질 신규 원전인 플라망빌 원전 3호기를 건설 중이다. 당초 완공 계획보다 10년 이상 지연된 탓에 '예산 갉아먹는 하마'란 오명이 씌워진 플라망빌 원전을 성공적으로 가동시켜야 한다. 올초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가 발표한 신규 원자로 6기 건설 계획도 EDF 몫이다.
○유럽의 희귀한 '親원전 강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7일(현지시간) "이 같은 상황에서 EDF를 국유화하는 것만이 유일한 정답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나오고 있다"고 보도했다. EDF는 원자력발전소 건설과 전력 생산, 송전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핵발전소 운용이 주력 사업이다. 프랑스의 원자력 발전 비중이 전체 전력 생산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EDF는 국가적 자산이기도 하다.

EDF의 중요성은 최근 유럽 전역에서 더욱 돋보이고 있다. 유럽연합(EU)의 에너지 안보에 원전이 필수 에너지원으로서 다시 주목받으면서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몇 안 되는 친(親)원전 국가다. 그간 많은 EU 회원국들이 값싼 프랑스산 원자력 에너지에 의존해왔지만,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전 세계적인 탈(脫)원전 열풍으로 인해 프랑스 원전 산업은 갖은 눈총을 받는 찬밥 신세로 전락했다.


자연히 EDF은 도태되기 시작했다. 재정적 어려움 탓에 프랑스 원전 56기 가운데 대부분이 부식이나 노후화 문제를 겪어도 제때, 제대로 수리되지 못했다. 탈원전 열풍으로 원전 건설 수요가 얼어붙은 게 EDF의 '고난의 시작'이었다면, 그 이후 프랑스 정치권의 각종 개입도 문제를 키웠다.

EDF는 2015년 원전 국영기업 아레바를 떠앉아야 했다. 당시 탈원전에 의한 수주 급랭 여파로 아레바는 파산 위기 직전의 부채 덩어리에 불과했다. 프랑스 정부는 원전 산업을 재편한다는 구조조정 명목 하에 아레바를 EDF와 합병시켰다. 프랑스 정부는 올해 초에도 EDF에 또 다른 복병을 안겨줬다. 에너지값이 치솟아 민심이 들끓자 전기료 상한제를 도입했다. 신용평가사들은 "올해 EDF의 부채는 작년 규모(430억유로)를 가뿐히 넘어설 것"이라면서 "올초 있었던 긴급자금 투입 외에도 추가 수혈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올해 2월 마크롱 대통령이 '원전 르네상스' 시대를 공표하고 지난 6일엔 EU 차원에서도 원전을 친환경 에너지로 인정하는 '그린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 법안을 최종 확정했지만, 망가진 원전 생태계를 복원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이미 올해 프랑스 원전의 전력 생산량은 수십년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 에너지 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프랑스 원전 산업이 완전 복구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러시아산 에너지가 끊기는 마당에 당장 올겨울 이탈리아, 스위스, 영국 등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EDF가 영국 남서부에 건설 중인 힌클리포인트C 원전 등도 예산 부족과 공사 지연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상장폐지(국유화)가 기사회생시킬까
과거 프랑스 원전 생태계를 꽃피웠던 많은 전문 인력들은 그 사이에 산업 현장을 떠났다. 1999년 프랑스 중부 지역의 시보 원자로 완공 이후엔 신규 원전이 한곳도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짓고 있는 플라망빌 원전 사업도 당초 2012년 완공을 목표로 2007년 첫삽을 떴지만, 10년 넘게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한 프랑스 원전업계 관계자는 "시보와 플라망빌 간의 시간차 사이에서 우리는 대형 원전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역량에 대한 지식과 엔지니어들을 모두 잃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꼬집었다.

이런 상황에서 100% 국유화가 정답이 될 수 있을까. 프랑스 에너지 싱크탱크 IFRI의 한 선임 고문은 "원전 기술, 숙련 엔지니어 확보 등 EDF 앞에 놓인 많은 숙제들은 국유화된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며 "산업적 문제, 규제 이슈 중 EDF의 지분구조와 관련된 건 하나도 없다"고 비판했다.


반면 한 프랑스 정부 관계자는 "EDF가 완전히 국유화되면 신규 프로젝트 등에 관한 내부 의사 결정이 매우 빨라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장 베르나르 레비 전 EDF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퇴임하기 전에 직원들에게 공지한 내부 메모에서 "상장기업이 미래 프로젝트를 다루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고 토로했다. 상장사는 소액주주와 환경단체 등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을 고려해야 하는 만큼 각종 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 번번이 발목이 잡힐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완전 국영화를 위한 상장폐지는 일단 EDF를 주식 시장에서 탈출시킨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FT는 지적했다. 2005년 부분 민영화를 통해 지분 16%가 공모 시장에 나온 이후 EDF 주가는 계속 하락하고 있다. 2007년 정점을 찍은 뒤 현재까지 90% 가까이 폭락했다. 레비 전 CEO는 "상폐가 EDF의 모든 규제 이슈와 부채 규모를 한번에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그 해결책을 찾는 첫 단추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는 이르면 10월 70억유로(약 9조원)에 달하는 EDF 지분 16%를 텐더오퍼(공개매수)한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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